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8화(158/221)
158. 거래 (2)
158. 거래 (2)
“데이브, 그게 사실이야? 대량이면 얼마나?”
“음, 정확한 개수는 아직 말 안 해줬는데 시세에 맞춰서 팔고 싶대.”
“지금 시세?”
연구실이 아닌 곧장 동아리실로 향했고, 데이브는 바로 달려온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연락을 하고 있던 노트북을 돌려 내게 채팅창을 보여줬다.
[10,000BTC= 41$]
비트코인 1만 개가 41달러라. 1달러당 약 250개씩 거래되고 있었다. 작년에 1달러에 1300개의 비트코인이 오가던 것에 비하면 그사이에 가파르게 가격이 오른 상태.
하지만 미래에 있을 상승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그때 채팅이 다시 왔다.
[Hey, How much money do you have?(님. 돈 얼마나 가지고 있음?)]
“별로 없다고 해.”
“엥? 너 대량으로 사려고 했던 거 아니야?”
“돈이 많다고 해봤자 흥정만 부추길 뿐이야. 굳이 먼저 많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내 말에 데이브가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내 말을 받아친 데이브.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30,000]
“삼만? 삼만 개가 있다는 건가?”
“삼만 개가지곤 많다고 하긴 좀 그런데.”
“어 뭐 더 친다.”
[+0]
? 뭐라는 거지?
[300,000]
“…”
“…”
비트코인 삼 십만개. 말도 안되는 숫자가 눈앞에 뜨자 나와 데이브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데이브, 우리가 지금까지 모은 비트코인이 몇 개였지?”
“어···아마 5만 개쯤 될걸?”
“전에 말했을 때보다 별로 안 모였네.”
“그게 처음에는 채굴 난이도가 낮아서 사람들이 싼값에 주고받았었는데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그리고 애초에 이걸로 돈 벌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데이브는 최근에 있었던 기사를 내게 보여줬다.
불과 일주일도 채 안된 따끈따끈한 기사 속에선 피자 두 판이 놓여있었다.
“플로리다에서 피자 2판을 비트코인 5만 개에 샀다나 봐. 지금까지 네가 모은 거 피자 2판 정도 값밖에 안 된다고.”
“사람들 반응은?”
“뭐, 비트코인으로 피자 산 걸 신기해하는데 어디까지나 장난감 가지고 노는 느낌이지. 이걸 진지하게 화폐로 생각하는 사람은 손에 꼽아.”
물론 사이트에서 계속 도배하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냥 심심한 거 같아. 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데이브.
그는 내 진지한 표정을 보더니 설마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 진짜 이거 다 살 생각은 아니지?”
“살 거야.”
“왓 더···진심이야? 이거면 1,000달러가 넘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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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 달러. 한국돈으로 해봐야 130만 원 남짓이다. 나는 100만 원 정도야 뭐…껌값이지.
하지만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만약 여기서 내가 대량으로 구매하는 일이 혹시라도 미래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누군가 비트코인을 매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물며 작은 일 하나가 금융 시장에 큰 파동을 일으키는 게 비일비재한 지금. 나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전에 왜 팔려고 하는지 물어봐 줘.”
“아니···진짜 왜 이렇게 진심인지 모르겠네.”
데이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히면서도 채팅을 부지런히 쳤다. 꽤 오랜 시간 답장을 안 했던 터라 혹시라도 다른 사람한테 간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도 바로 답장이 왔다.
[Now is the high point(지금이 고점임)]
고점이라. 나중에 개당 6만 달러가 넘어가는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하군.
하지만 이 사람이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 피자 사건이 있은 후로 비트코인을 거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가 지금 가격에 안착된 상황이었으니까.
1달러당 약 1300개씩 거래되던 게 1달러에 250개가 되었다. 거의 5배가 넘게 올라간 상황. 이정도면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하겠지.
“산다고 보내.”
“···진짜 넌 캡틴이 맞아.”
채팅을 보낼까 말까 망설이던 데이브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메시지를 보냈다.
[Thanks sucker(고맙다 호구)]
“으아아아악! 눈 앞에서 천 달러가 증발했다!”
“증발은 무슨. 나중을 위한 거야.”
“나중은 무슨! 너 나중에 투자할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먼저 허락받고 투자해. 알았지?”
데이브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총 비트코인은 35만개.
비트코인의 총 발행 개수가 2100만개인 것에 비해 이 수가 적어보이지만…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자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도 100만개 정도 보유했다니까 뭐.
이정도 개수라면 전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개인 보유량이었다.
‘갑자기 비트코인 가격이 미친듯이 폭등하던 시기가 아마 2013년이었지. 가격은 1,200달러 정도였고.’
비트코인 한 개당 1,200달러라. 내가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을 삽십만 개로 계산한다고 해도···.
3억 6천달러. 현재 환율로 치면?
“데이브. 잠깐 노트북 좀 쓸게.”
“왜, 비트코인으로 피자라도 사게?”
“환율 좀 확인해보려고.”
궁시렁대는 데이브에게서 노트북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환율을 계산했다.
[480,614,353,307원]
말도 안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더 말도 안되는 것은,
이게 최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중엔 적어도 0이 하나 더 붙을테니까.
*
“뭐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잠깐 교수님 좀 뵈었다가 동아리실 갔다왔어요.“
“동아리?”
뒤늦게 연구실에 가니 김아진이 나를 보며 아우성쳤다. 보아하니 휴식 시간이 길어져 심심해하는 중인 것 같았다.
김아진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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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지금까지 수업, 연구, 수업, 연구만 반복하는 줄 알았는데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었어? 뭔데? 미식축구? 아니면 오케스트라?”
“아뇨. 그냥 평범한 동아리인데요.”
“이름이 뭔데?”
“…그, 있어요. 그냥 동아리.”
내 말에 김아진이 미간을 좁힌 채 다가왔다. 불신이 가득한 눈이다.
나는 그런 시선을 애써 피하며 실험복으로 갈아입었다. 직접 유전인자를 다루는 실험이다 보니 실험복이나 실험실 내부의 환경을 잘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에.
“이름 못 말하는 거 보니까···. 일부러 동아리 갔다 왔다고 거짓말한 거구나!”
“아닌데요. 진짜 동아리 있어요. 그리고 제가 뭐하러 거짓말을 해요.”
“왜~ 인싸인 척 동아리 활동 하고 왔다고 할 수도 있지!”
동아리 이름을 끈질기게 물어보는 김아진이었고, 나는 실험 준비를 마친 상태로 실험대 앞 의자에 앉았다.
동아리는 부끄럽지 않지만 이름은 좀…하여튼 이름이 좀 그렇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실험 과정을 차근 차근 짚었다.
‘우선 기존에 있는 APOE ε4 대립유전자를 표적으로 삼는 gRNA를 준비한 후에···.’
멸균 조건에서 적절한 세포를 배양. 이후 화학적 형질감염 방법을 이용해 세포를 형질 감염시키고, 유전자 편집 기술에 활용되는 CRISPR이 DNA를 편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 텀을 준다.
이 모든 과정이 단시간에 일어나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이번 실험과 관련된 설계를 하나씩 진행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Brainer도 처음에 왔다가 그 이후로는 안 오고 있잖아. 진짜 다른 동아리 활동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야?”
“그건 아닌데···. 연구하는 데 시간 쏟아도 모자라요. 동아리 활동 같은 거 진지하게 할 생각도 없고요.”
“에. 진심이야?”
순간 김아진의 목소리가 사뭇 달라졌다. 나는 배양배지를 만지다 말고 고개를 돌려 김아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진짜 동아리가 그냥 단순 재미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맞지 않아요? 전에 보니까 Brainer 동아리도 사교 클럽에 가깝던데.”
사교 클럽. 좋게 말해서 사교 클럽이지 한마디로 놀자판이었다. 내 말에 김아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치 철없는 동생을 바라보는 듯이.
“사교 클럽의 성격이 좀 많이 띄고 있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여기서 다져놓은 인맥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도움이 되니까.”
“인맥이라···. 어차피 저는 연구만 할 건데요?”
“어느 연구소에 갈 건데?”
“어···.”
갑작스런 질문에 순간 말을 잃었다. 어느 연구소에 갈거냐고? 따로 생각했던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지금처럼 에단 교수 밑에서 연구를 하고, 또 데이브의 키트가 완성되면 유전자 데이터를 돌리고···?
“봐봐, 지금은 네가 있을 곳이 분명해 보이지만 너는 여기서 외국인이야. 그것도 유학 비자를 받아서 잠깐 허용된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나중에 네가 한국에 들어간다면 상관없지만 보아하니 계속 미국에서 연구할 생각 아니야?”
나는 배지를 내려놓았다. 지금 여기에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김아진의 말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니까.
결국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 나는 다소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아직 확정 난 건 없지만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게 될 것 같아요. 여기서 공동 연구를 진행하든, 아니면 제가 그쪽으로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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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엔?”
“그때 가서 할 일이죠. 왜 이렇게 미래 일을 따져요? 선배답지 않게.”
살짝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하자 김아진이 바로 대답했다.
“너 이곳에서 연구하다가 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본 적 있어?”
“…아뇨.”
“나는 본 적 있어. 대부분 능력도 있고 좋지만···. 자리가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해.”
김아진의 진지한 모습은 꽤 낯선 것이었기에 나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뭔가 느낌상 전생 때 그녀가 박사과정 중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박사과정을 밟게 되는 것도 꽤 시간이 흐른 후였으니까.
“동아리는 일종의 취업 풀이 되는 거야. 유학생의 신분을 보증해 줄 수 있는 건 이런 게 아니고선 별로 없다고.”
“연구 실적으로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인맥으로 취직하고 그런 거 좀 그렇네요.”
“연구 실적은 어떻게 쌓을 건데?”
“그야 지금처럼···.”
나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지금 내가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특이 케이스니까. 아밀로잽이 네이처에 실리고, 줄기세포 포럼에서 모두를 놀래키고 난 뒤, 에단 교수의 눈에 들어서 겨우 들어오게 된 연구실.
일반 평범한 유학생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아진 역시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맡은 부분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뭐가.”
“인맥으로 취업한다고 말한 거요.”
···전생이었다면 이렇게 김아진에게 사과할 일도 없었을거다. 애초에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뭐가 됐든 아까 내 발언은···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인맥으로 취업하는 걸 좋게 보진 않아요.”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인맥이라는게–”
“하지만 만약 제가 그 상황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지금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에단 교수의 실험실도 사용할 수 없고, 연구와 관련된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 내가 하는 연구가 법에 위배되어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게 만들었겠지.
게다가 따지고 보면 나도 인맥을 톡톡히 덕 본 사람이기도 하니까. 나라고 그 혜택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살짝 비장한 목소리로 답하자 김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사과하니까 봐준다. 그리고! 나도 인맥으로 취업하기 싫어! 어디까지나 내 힘으로 연구소에 취직하는게 목표라고!”
“알아요.”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보험이라는 거지, 보험! 이 험난한 대륙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한동안 김아진으로부터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자의 설움’과 ‘한국인 유학생으로 살면서 받았던 오해와 차별들’에 대해 내리 들어야했고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스킬을 사용하며 다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넌 걱정 없겠네. 능력 되지, 인맥도 있지, 심지어 나이도 어려! 나중에 성공하면 한자리 꽂아주기다?”
“미리 거절합니다.”
“아 왜!!”
장난스레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김아진. 그 순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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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그래, 지금 잠깐 통화 가능하겠니.]
김성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김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상 시험과 괸련된 이야기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